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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선생님의 답변에 대하여 재문의 드립니다.

작성일 06-05-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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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삿갓 조회 6,94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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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때, "정지하라", "그쳐라"라고 하더라도 이미 오랫동안 허망한 '완전'을 향하여, '깨달음'을 향하여 끊임없이 취사(取捨)하며 나아가는 것이 뿌리깊은 습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것'에 멈추고[止] 머무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왜냐하면, 우리가 그토록 '수행'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완전'과 '깨달음'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것 속에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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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김선생님의 말씀을 보면
'완전과 깨달음'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것 속에 이미 있는데
왜 다시
뿌리깊은 습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것'에 멈추고 머무려는 노력이 필요한지요?
즉 불교 용어중
모두가 이미 부처인데 왜 無明이 생기게 되는가요?
이미 완전히 있다면 김선생님의 좋으신 말씀도 쓸데없는 이야기가 되고(막 그냥 살면되니까^^)
(막 그냥 살게되면 극단적인 표현으로 살인을 하던 어떻게 살던 내 맘인데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뿌리깊은 습관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면 '그냥 온전히 머물고만' 있으라고 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는가요 ?
즉 무명은 본래 환이며 착각이며 모두가 부처라고 하지만 또한 중생도 있는 소이가 무엇입니까 ?
김선생님의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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