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눈물은 왜 짠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꽃씨 (110.♡.211.109) 댓글 0건 조회 7,109회 작성일 11-05-23 00:13

본문

dsc_3053.jpg
함민복,「눈물은 왜 짠가」 낭송 김상현 | 2007.05.07

눈물은 왜 짠가?

함 민 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 1996

굳이 고상한 척, 잘난 척해야만 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짠한 생의 한 순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한 편의 시가 탄생합니다.
아들에게 설렁탕 국물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과
그 앞에서 민망스러워 안절부절못하는 아들의 마음,
그리고 이 풍경의 안과 바깥을 조심스럽게 드나드는
주인아저씨의 마음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때로는 훈훈하게,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때로는 넉넉하게,
때로는 구질구질하게, 때로는 슬프게 말입니다.
이 한 편의 시에 인생이 다 들어앉아 있습니다.
문학집배원 안도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290건 162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265 나무 5307 08-10-06
2264 흰구름 14771 08-10-06
2263 장영재 8790 08-10-06
2262 대원 5113 08-10-06
2261 김재환 9277 08-10-06
2260 나무 5039 08-10-06
2259 정도 6103 08-10-05
2258 젊은이 5461 08-10-05
2257 나무 5334 08-10-05
2256 박연주 8459 08-10-05
2255 바람 5105 08-10-04
2254 금구름 5091 08-10-03
2253 금구름 5345 08-10-03
2252 소요 5444 08-10-02
2251 소요 5370 08-10-02
2250 대원님께 5210 08-10-02
2249 대원 6710 08-10-02
2248 소요 8176 08-10-02
2247 대원 5182 08-10-01
2246 ahffk 5222 08-09-30
2245 ahffk 8471 08-09-30
2244 동네아저씨 8836 08-09-30
2243 대원 5592 08-09-30
2242 소요 5933 08-09-30
2241 ahffk 5006 08-09-29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4,094
어제
7,052
최대
18,354
전체
7,348,471

Copyright © 2006~2018 BE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