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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의 이율배반성 -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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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11.♡.228.4) 댓글 0건 조회 3,963회 작성일 08-02-2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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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 기독교

예수 사후 수백년이 지날 때 까지 초기 교회는 예수를 향한 순수하고 정열적인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당연스레 (예수가 그리했던 것처럼)약자를 대변하는 경건하고 헌신적인 신앙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스도교는 ‘약자들의 믿음’이었다.


그러나 들불같이 번지는 새로운 믿음에 로마 지배세력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태양신 숭배가 일반적인 로마인들에게 갑작스레 세력을 형성하는 그리스도교들은 권력 체계를 뒤흔드는 엄청난 파문이었고 그 이후 300년간 로마지도층들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 집단을 탄압했고, 정치-경제적으로 철저히 소외시켰다.

2. 기독교 공인 후


300여년의 모진 박해와 고난의 세월을 이겨온 기독교인들에게 한줄기 거대한 빛이 비춰진 것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을 통해서였다.(313) 문제는 자신이 주조한 화폐에 ‘태양신’을 새겨 넣기까지 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경건한 기독교인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 기독교를 공인한 것이였고, 그가 공인한 기독교가 로마 정치조직의 관료조직을 그대로 본떳다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기독교는 서서히 ‘강자들의 믿음’이 되어가고 있었고, 이에 의해서 초기 교회가 가지고 있던 순수함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 시대는 ‘정교일치’의 사회였기 때문에 교리의 난립으로 인한 정국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콘스탄티누스는 각 교회의 주교들을 모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의견의 일치를 ‘강요’했다.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삼위일체 건에 대해서는 교세가 컸었던 이들이 주장했던 ‘삼위일체 찬성파’가 ‘삼위일체 반대파’를 (당연히) 압도했고, ‘정치적 논리’에 의해서 반대파들은 파문당했다. 공의회의 입장과 다른 선에 서 있던 교회들은 불태워졌고, 사도들은 찢기워졌다. 이 모든 행위의 배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정치-군사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일개 군사령관에서 반역을 통해서 로마의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공인 이후로도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인된 성경의 집적을 명하였는데, 각 교회에 교부금을 줄 것을 약속한 후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서 모아진 27권의 성경에 시대적 한계가 배여 들어가 있음은 말할 나위없다. 하지만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공인된 성경’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이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은 곧 이단시 되었다.


기독교 공인 후 부터 중세 ‘암흑기’에 접어들었다고 사가들은 역사하는데, 이는 황제와 (그후에 성립되는)교황의 이해관계에 얽혀서 그들이 ‘공인’하는 것들 이외의 모든 ‘주장’과 ‘사상’과 ‘문화’는 무조건 ‘이단’시 되고, 장작불로 ‘정화’되어야 했음에 의한다.

3. 교회의 권력화

교회가 로마의 관료조직을 그대로 답습했을 때부터 교회의 권력화는 예견되었던 일이었는데, 세력을 확장하며 교회는 점차 부패하기 시작했다. 로마의 교황은 로마의 속국인 각 나라에 교회를 세우고 ‘주교’와 ‘수도원장’을 임명할 권한을 가졌는데, 10일조를 비롯한 각종 명목은 농민들을 점점 가난하게 만들어 갔고 내부적인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교회가 가지는 초월적인 권능으로 각 나라의 국왕에게 ‘세금’을 낼 필요가 없기에 끝없이 쌓여지던 교회의 재산은 로마 교회를 ‘무장’하게 만들었다. 상업활동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에 소득의 유일한 원천이 ‘토지’ 였던 중세에서 유럽의 3분의 1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교황의 힘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고, 당연스레 황제권력에 맞서서 때로는 교황의 승리로 결판 날 때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교회권력의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이시대의 믿음이라는 것은 너무도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것이어서, 대부분의 민중들은 교황이 강요하는 그대로의 것을 ‘만유의 진리’로 알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아마 이는 믿지 않으면 화형을 시키고 십자가에 못을 박는 강압도 작용을 했을 것이지만, 믿음과 생활이 둘로 나뉘어져 있지 않은 사회에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의지의 결과일 수도 있었다.

4. 종교개혁


하지만 교회의 폐단이 극대화 하여 이것은 결국 폭발하게 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대로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였다.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 성전 건립을 위해 모금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를 위해서 ‘대사령’(면죄부)을 내리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죄’와 ‘벌’을 구분하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기는 했지만, ‘벌’을 사함 받는 것은 하나님께 맞기고 있었다. 하지만 교황의 권능은 어느새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여 대사행위를 통해서 ‘벌’을 사함 받을 수 있다고 교회에서는 공표하고 있었다. 면죄부는 그러한 ‘벌’의 사함을 받기 위한 ‘보속(댓가)’였던 것이다. (면죄부의 ‘죄를 면해준다’는 표현은 ‘죄와 벌’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각국에 교회를 세워 놓고 끝없는 명목으로 민중들을 수탈하고 착취하던 교회의 현실은 변화하는 시대의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국가’의 개념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하고 있었음으로 로마로 빨려 나가는 막대한 부에 대해서 각 국의 ‘제후’ ‘상인’ ‘농민’들은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죄와벌을 사해준답시고 또 다른 명목으로 민중을 착취하는 교회의 행태는 대대적인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때 루터가 나타나서 진심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교도는 속유의 문서(면죄부)가 없더라도 구원을 받는다”(이신득의)며 면죄부의 부당성을 지정한다. 기존의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던 제후들과 상업자본을 가진 상인들, 그리고 교회의 탐욕 때문에 땅을 빼앗겼던 거지로 전락한 소작농과 농민들은 대대적인 열광을 보냈다.

5. 개신교의성립

이러한 전국민적인 호응에 힘입어 루터인간 모두가 사제로서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며 교황제도까지 거부하면서 기존의 교회 체제를 무너트린다. 물론 이는 '제후'들과 그 당시 형성되던 '상업자본'과 교회로 부터 수탈당하던 절대다수의 농민들의 지지의 결과였음은 말할나위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루터가 종교혁명을 시작했던 역사적 궤적을 살펴봤을 때는 루터 역시 스스로 주장한 바대로의 ‘일신득의’ 교리적 관점에서 교회 자체가 필요 없다고 주장해야 했을 것이다. 신과 인간의 개별적인 관계를 통해야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는, 그 사이에 '교회'가 끼어드는 것을 쓸데 없는 것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위 없이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나약하고 몽매한 인간의 한계로 인해서 교회를 없앴다가는 믿음 자체도 소멸할 걱정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루터는 교회를 남겨 놓되, 최소한의 형식으로 제안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의 교회는 아주 간소하고 소박하며 목사가 ‘군림’하지 않는 형태를 취했다. 그것이 루터의 입장에서는 지당했다.


루터가 기존 교회를 비판하고 종교혁명을 이뤘던 그 시발 자체가 ‘교황만 사제가 아니고 인간 모두가 사제이고, 성경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에 입각했던 것이기에, 다시 민중들 앞에 ‘군림’하는 목사를 세운다는 것 자체는 자신의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결국 루터는 새로 세운 교회의 ‘목사는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고 못 박았고, 단순히 신자들의 ‘안내자’이기 때문에 기존교회의 ‘주교’ ‘수도사’들과 달리 일반인과 같은 옷을 입고, 결혼을 할 수 있게 그 일상적 삶의 가능성을 연 것이었다. 이로 인해서 ‘개신교’가 성립된다. 당연히 그 ‘안내자’들은 똑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수도 할 수 있고, 허점도 있을 수 있음은 전제되는 것이었다.

6. 한국의 교회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상당수는 목사를 ‘작은하나님’ 정도로 ‘추종’한다. 그들은 ‘목사’를 추호의 실수도 있을 수 없는 신의 대리인 정도로 생각한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개신교의 시조인 루터가 주장했던 바대로의 ‘하나님과 나와의 온전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 위에 군림해 있는 특정 목사들을 떠 받들면서 그들을 통한 구원의 티켓을 사기 위해 안달이나 있는 상황이다.


모 교회에서 특정후보를 지칭하면서 ‘이분 안찍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려’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것, 한국의 40명 쯤 되는 예수가 크고 작은교회에서 영생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 노골적으로 스스로 예수라고 지칭하지는 않더라도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믿음의 관계를 형성시켜서 자신을 신의 대리인 쯤으로 신도들에게 각인시키고 이를 통해서 신도들의 추종과 복종을 이끌어 내는 행태는 모두 시대를 역행하는 행태이다.


루터는 ‘배우지 못한 이들’이 올바른 믿음을 얻을 수 있게끔 ‘안내자’(목사)들이 공부를 해서 그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현대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민중들의 배우지 못했음’을 이용해서 민중들의 눈과 귀를 막고 그들 위에 군림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중선동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이율배반적이게도 이렇게 그들 종교(개신교)의 시조의 주장을 배반하는 믿음을 믿으면서도 ‘신의 권능’을 떳떳하게 선포할 수 있는 파렴치함은 그들 자신의 무지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또 다른 원인은 한국인 특유의 집단성에 있는 듯 하다.


이 나라 역사의 ‘빈틈’은 민중 개개인에게 주체적인 사고를 확립할 기회를 주지 못했고, 더불어 ‘신과 나와의 주체적인 관계’를 확립할 여지를 주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한국사회에서는 ‘나’를 깨울 역사적-정치적-문화적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한국인들은 수천년 동안 적응되었던 편한대로의 ‘집단주의’ 성향으로 신흥 종교인 개신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이러한 비주체적인 ‘집단’이 특정 ‘지도자’를 추종하게 되는 것은 무리 근성의 특성이다.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이 없는 ‘무리집단’에는 늘 이를 이끄는 ‘대장’이 있기 마련이다. 민족성 자체가 아마 이렇게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 대 개인의 관계’를 만드는데 한편의 장애가 되었었던 듯 하다.


이렇게 루터 당시의 개신교가 추구하는 ‘개인과 하나님의 직접적 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무리집단의 감성에만 휩쓸리다 보니 부당한 모습이 늘상 연출된다. 언론매체에서 특정 종교 지도자의 부정-부패를 문제 삼으면 그 신도들은 땅이 꺼질 것 같이 놀라,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서 이를 무마하려고 난리를 피운다. 그렇게 과격한 행동을 통한 지도자에 대한 충성은 아니더라도 ‘우리 교회만큼은 훌륭해’ ‘우리 교회 목사님은 진실만 말씀하셔’ 라며, 감성적으로 몰입하여 열심을 다해 교회를 다니는 것 조차도 참으로 부적절한 믿음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그 ‘안내자’(목사)들이 온전한 자신들의 임무 수행을 통해서 ‘개인과 하나님의 직접적 관계’를 성립시켰다면 그 신도들은 그렇게 특정 교회에 ‘숙주’하고 ‘기생’하지 않고 ‘자신의 발로 서는 믿음’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교회에 대한 자랑을 늘어 놓으면서 이에 집단적 무리근성을 보이는 현대한국사회의 믿음 자체는 (루터가 개신교를 성립시키려 했던 관점에서는) 참으로 ‘박멸되어야할 믿음’인 것이다.


여기에 현대 사회의 ‘자본’과 ‘권력성’까지 종교에 침투하다 보니, ‘신도’도 그렇고 ‘목사’들도 그렇고 집단주의적 패권의식, 승리주의, 권력지형성에 휩쓸려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종종 들려오는 교회들의 타락상은 ‘이러한 믿음’이 잉태하고 있는 뒤틀린 생명작용의 결과이다.


이렇다 보니 세계기독교연합회 총회장으로부터 ‘한국의 기독교는 양적으로 성장을 많이 했으니, 이제는 질적으로 성장해야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처지이지만, 한국에는 온전한 믿음의 ‘안내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그 말의 의미는 신도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 하다.


적반하장격으로 이들은 ‘한국인들의 믿음이야 말로 진실이고, 우리의 믿음을 비판하는 그들의 믿음은 올바르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타종교(카톨릭, 불교)에 대해서까지 무턱댄 배척성을 보이는데, 이러한 전반의 행태는 종교개혁기 이전의 부패한 카톨릭 교회가 보여 오던 믿음의 답습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21세기 한국사회에는 (루터 등장 이전의)‘중세 암흑기’가 그대로 되풀이 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담 누가! 이를 개혁할 것인가!!!


2008. 2. 25

이 글은 기독교인들을 단죄하고 심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다만 그 ‘믿음’이 그 ‘교리’를 배반하고 있음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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