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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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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배경 (211.♡.76.142) 댓글 0건 조회 11,056회 작성일 08-01-1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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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cafe.daum.net/yumhwasil/7uHJ/54

證道歌 무비스님 문수원 강의

君不見가

(군불견가)

그대는 알리라.


군불견(君不見)가,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이게 ‘보지 못했는가’ 하는 말은 ‘보았는가’ 하는 말하고 사실 같애요.

‘우리집 아 어디 가는거 봤나?’ 하는 소리나 ‘우리집 아 못봤나?’ 하는 소리나 사실 의미는 똑같듯이 이 불견이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뭘 못 봤나 하는 말이예요.

그대는 못 봤는가?

뭘 못봤나? 뭘 못 봤느냐고 그게 없어요 이 보면은.

그대는 그냥 못 봤나? 이 말이예요. 못 봤나?

뭘 두고 하는 소리 같애요?


제대로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 인생의 의미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혹 그대를 보지 못했는가, 이렇게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을 말하자면 여기서는


絶學無爲閑道人은

(절학무위한도인은)

배울 것도 없고 할 일도 없는 한가한 도인은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이다 그랬어요, 절학무위한도인이다.

절학(絶學), 배우는 일을 다 끊었다 이거예요.

아 그 놈 배우는 것, 평생 공부니 뭐니 유치원에서부터 지금도 보살님들 배우러 많이 다니죠? 한 곳만 다니는 게 아니예요, 여기저기 온갖 것 배우러 쫓아다니고 그러는데.

제대로 참,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면은 배울게 이제 끝났다는 거지. 그래서 끊을 절(絶)자 배울 학(學)자라.

배우는 일을 다 끊었다. 그래서 하는 게 없는 거야. 배우는 일이야 말로 진짜 하는 거야. 그 외에는 하는 거라고 할 수가 없어. ‘아이구 뭐 좋은 일 했다’ ‘훌륭한 일 했다’ 하는거 그건 다 소용없는 일이고, 정말 배우는 일이야 말로 제대로 하는 일이다 그렇게 보는거죠.


그래서 이 배우는 일이 다 끝났으니까 하는 일이 없어. 무위(無爲)야 무위. 불교에서 굉장히 숭상하는 말이죠. 무위라는 말. 그래서 한가한 도인이다. 한도인.

한가함. 삶의 보람은 뭐 사람마다 여러가지겠지만은 그저 인생을 한가하게 사는 것 이게 태어난 보람이라고 그래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도연초』에 보면은 한가하게 사는 것 그것이야 말로 태어난 보람이다 그랬어요.

한가하면 느낄 수가 있어요. 바쁘면 못 느낍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맛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것은 한가해야 돼.

한가하니까 그런 것을 한껏 느끼니까 그 속에 삶의 보람과 가치를 맛본다는 것입니다. 그 스님도 일리가 있어요. 일본의 그 한 600년 전 스님이 쓴 그 글인데.


한가함을 느끼는 것, 한가함을 즐기는 것 이것이야 말로 삶의 보람이다. 그래 한도인(閑道人)이라고 그랬습니다.

한가한 도인, 도인이라고 하니까 복잡하게 생각하고 높이 생각할 게 아니라 아까 이야기 했듯이 천하 사람이 다 걸어가는 삶의 길이 바로 도인, 도인인거죠. 그 길을 다 가고 있는데 그 깊이가 어떠하냐 거기에 차이가 물론 있겠습니다.

제대로 깨닫고 인생을 제대로 깨닫고 가는 사람, 그 사람은 이른다.

不除妄想不求眞이라

(부제망상불구진이라)

망상을 버리지도 않고, 진심을 구하지도 않네.


부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이라.

우리는 내 마음에 드는거 취하고 마음에 안 드는거 버리죠.

그런데 그걸 이제 보통 우리가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망상은 버리고 진리는 구한다 그래요. 진리는 구한다, 좋은 일은 말하자면 하고, 안 좋다고 하는 일, 도에 방해되고 뭐 이것은 세속적인 일이다 뭐다 하는 거 그런 것은 전부 버리려고 하죠.

천만에, 제대로 된 사람은 그렇게 안 해.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진리를 구하지도 안 해. 진상이라고 해도 좋아요. 참생각, 좋은 생각, 망상은 망령된 생각이라면은 진은 참다운 생각,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참다운 생각 안 좋은 생각이 어딨어요?


사람이 일으키는 생각은 전부 똑같지. 왜냐, 한마음에서 일어난 것이여. 물에서 일어난 물결은 똑같애. 그 물이야.

아무리 파도가 높게 치든 작게 치든 안 치든 떠서 맛을 보면 전부 짠맛이야. 한 맛이라고요. 그게 파도 친다고 좋은 물이 아니고 파도 안친다고 좋은 물이 아니야. 똑같은 물이야.

괜히 우리가 모르고 무슨 안 좋은 생각, 좋은 생각 분별하고 안 좋은 생각은 버려야 할 거고 좋은 생각은 취해야 할거다 이렇게 이제 우리가 취사선택을 하죠.

거기에서 온갖 고통이 이제 따르는 거죠 사실은.


부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이라. 참 이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뭐 특히 구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안좋은 습관 그거 버리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하, 누가 잘하니까 아주 행동 아름답게 하니까 나도 배워야지. 안되면서도 자꾸 배워야지 하는 그 마음 때문에 그만 고통스럽고 안달하는거야.

그거 할 거 없다고요. 그래 버리면 그냥 편안해.

내가 전번에 그 천성산에 내 도반스님한테 가서 들은 이야긴데 밤에 하루 저녁 자면서 이제, 자기는 어디 여행가가지고 어떤 스님을 만났다는 거야. 옛날에 같이 선방 있던 스님이라.

가만히, 둘이 모처럼 만나서 이렇게 보니까 이 스님은 지금도,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아주 공부를 못해서 안달이거든. 그래가지고 영 뭐 불안해 하고 영 편치가 않은 거야. 아, 여행 보통 나가갖고 도반 만났으면 마음 편안하게 이렇게 말이지 느긋하게 좀 이렇게 쉬었다 가야 할텐데, 영 마음이 편치가 않고 말이지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그러고 있는거야.


그래 이 스님은 벌써 한 생각 놓아버렸어. ‘아, 뭐하려고 그래 공부하려고 하느냐고, 공부할려고 하는 생각 놓아버리니까 마음껏 편안한 걸 갖다가 나도 그전에 공부하려고 하다 보니까 어떻게나 불안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혼났다’는 거야. 그걸 10여년 이상 그렇게 고생했는데 어느 날 공부할 생각을 탁 놓아버렸다네?

그렇다고 뭐 다른 짓 하는 것도 아니야.

공부할 생각을 탁 놓고 보니까, 그게 그 사람의 깨달음이야 일종의 그 사람의 깨달음, 그래 놓고 보니까 천하에 편한 것을, 아주 아무 할 일도 없고 그렇게 편하더란 거야.

그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은거라. 충격을 받아가지고 계속 가슴에 그게 이제 남아있는데 그 소리 들었다고 지도 그래 되나? 안돼요. 그 한마디 듣고 충격은 받았지. 그런데 지도 놓고싶지, 안 놓아진다구요 그게.

그래가지고 내한테 또 그 이야길 하는거라. 사실은 그 해야 된다고 하는 마음, 버려야 된다고 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문제야.


이사람 보십시오. 부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이야, 망상 제하지도 안 해. 망상일어나면 망상 실컷 부린다고요. 그렇다고 뭐 특별히 구하는 어떤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니라.

왜냐? 이유가 있어. 그냥 뭐 지 멋대로 살라고 한 게 아니야. 고 밑에가 해답이야.


無明實性卽佛性이요

(무명실성이 즉불성이요)

무명의 실제 성품이 그대로 부처님 성품이며


무명실성(無明實性)이 즉불성(卽佛性)이요 환화공신즉법신(幻化空身卽法身)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말이야.

내가 뭐 억지로 딴 길로 나가면서, 무슨 뭐 외도가 되어가지고, 그리고 지 혼자 지 멋대로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이치에 이렇게 탁탁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부제망상불구진 한다 이거야. 망상 제하지도 않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 이유는 사실 알고 보니까 제할 망상도 없고, 구할 진리도 따로 없더라.

무명실성이 즉불성이야. 우리가 여기서 보면은 불성은 구하려고 하고, 무명은 제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제하려고 한 그 무명, 번뇌무명이 그대로 불성이야.


우리가 몽매에도 찾고자 하는 그 불성, 견성하잖아요, 견성(見性) 성품을 본다, 불성을 본다 하는 그 보고자 하는 그 불성이 바로 무명, 번뇌 무명이 그대로, 온갖 그냥 탐진치 삼독 부리고 말이죠, 시기하고 모함하고 그냥 욕하고 그냥 온갖 탐진치 다 부리던 그 무명 번뇌가 그대로 불성이야. 그대로 다이아몬드 덩어리, 보물덩어리, 불성 그대로더라 이거야.


무명실성이 즉불성이니까 그동안은 그런 줄 몰라노니까 무명은 버리고 불성은 찾고, 저 앞에 부제망상불구진 망상은 버리고 진리는, 진리가 뭐예요? 불성이지.

불성은 구하고 이렇게 했는데 아니야. 알고 보니까 무명 그대로가 불성이고 불성 그대로가 무명이야. 하나도 무명 아닌게 없고, 하나도 불성 아닌게 없어.

그러니까 구할 진리도 없고 버릴 망상도 없는 거지 그리고


幻化空身卽法身이라

(환화공신즉법신이라)

환영 같은 허망한 육신이 그대로 법신이네.


환화공신즉법신(幻化空身卽法身)이야, 우리는 이 몸뚱이는 말이죠 온갖 탐진치 삼독, 고통의 근원이다 그러지요.

환화공신, 헛된 몸 아니예요? 이 몸뚱이가 헛된 몸, 이 몸뚱이 육신 이것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 이 몸뚱이 때문에 온갖 죄를 범한다 그래가지고 이 몸뚱이를 증오하지요.

그래가지고 어떤 부정관을 해요.

하, 이 몸뚱이는 부정한 것이다 해가지고 해골관을 한다든지 아니면 무슨 뭐 썩어가지고 푸르딩딩한 시체를 관한다든지. 원시 선관에 보면 그런게 다 나와요.

심지어 염주까지 그 저 해골로 된 염주가, 108염주가 있잖습니까? 그런식으로 이제 이 몸뚱이를 부정하다고 그래 관하는 그런 관법이 있거든? 그것도 하나의 방편으로써 필요한 사람이 있고, 필요한 근기가 있어요.

그래서 이걸 싫어하고 멸시하고 그랬었는데 허망하다고 해서 그랬었는데 아니야 알고보니까 그대로 우리가 이 몸을 부정하고 찾고자 하는 진리의 몸 그대로더라.


그래 환화공신이 그대로 진리의 몸, 법신이더라 이거예요. 법신은 영원불변의 몸 아닙니까? 영원불변의 진리의 몸이거든.

그 찾고자 하는 영원불변의 진리의 몸이 그대로 이 몸, 허망한 이, 조금만 가시에 찔려도 피가 나고 조금만 감기만 걸려도 그냥 콜록콜록하고 어찌할 바 모르는 이 허망하고 부정할 데 이를데가 없는 이 몸뚱이가 그대로 법신이더라.

그러니까 법신을 구하고 뭐 이 몸뚱이 뭐 제거하고 버리고 취하고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이야기 다 한거예요. 불교 이야기 다 한 것입니다.


『화엄경』우리 공부할 때 그런 이야기 있었죠. 『법성게』 또 『약찬게』같은 거 뭐라고 했습니까? 물불 그대로 신이라고 했죠. 신이요, 부처요, 보살이라고.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육신, 망상 그대로 위대한 부처요, 보살이요 신이라. 사람 이보다 더 위대한 신은 없다고요.

내가 미국에 가서 법회를 이번에 여러 곳에서 하면서 주로 그런 이야기를 했어. 그쪽에는 기독교 사상이 팽배해 있는 나라 아닙니까?

인간보다 더 위대한 신 있으면 나와보라고 했어.

웃기면 금방 웃을 줄 알지, 기분 나쁜 소리하면 금방 얼굴 찡그릴 줄 알지, 이보다 더 훌륭한 신이 또 어딨느냐 이거예요. 참 기기묘묘하잖아요.

머리 쓰고 말이지, 머리 굴리는 거, 그거 신기하게 보라 이거야. 신기하게 보라.

신이 아니고 인간이 아니고 부처가 아니고 보살이 아니면 그거 머리 굴릴 줄 어떻게 알아? 저 목석이 머리 굴릴 줄 알아? 그것도 아름답게 보라 이거야.

나를 속인다, 아주 참 저거 신기하다 저 불성이 들어서서 나를 속일 줄 안다고 그거 인간이 아니면 못하는 거예요. 신이 아니면 못하는 거야. 그게 신이야 바로. 살아있는 신이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인간보다도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뭐 특수한 인간 아니고, 다이아몬드로 만들고 무슨 뭐 금으로 만들고 한 그런 인간이 아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 그 모습 그대로의 그 인간 또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마음 이대로의 이 인간, 이 인간보다도 더 위대하고 더 소중한 것은 없고, 이보다 더 위대한 불성과 법신은 또 없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경전을 봐도, 어느 깨달은 조사스님의 법문을 봐도 똑같애. 한결 같아요. 한결 같애.


『화엄경』은 통째로 이 우주 덩어리 그대로 부처라고 보고 보살이라고 보고 신이라고 보지 않습니까?

주성신중주지신 주산신중주림신 뭐 물불 바람, 공기 온갖 것들이 전부가, 심지어 뭐 가루라 아수라 까지도 전부 신으로 보고 부처로 보고 보살로 보는 그런 안목 그것이 바로 「화엄경」이거든요.

표현의 차이가 약간 있어서 그렇지 똑같다고요.

이런 데는 보면은 어떤 자연현상에 대한 그런 이해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르면은 그런 것도 그냥 바로 이해가 되거든요.

그러니 이건 우선 우리들 자신이 그렇다라고 이해를 해야 되고 다른 사람도 역시 동일하게 그렇다라고 이해가 될 때 바람직한 사회는 저절로 돌아오는 거죠.

행복과 평화라고 하는 것은 저절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그 가치성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를 못하면은요, 뭐 아무리 무슨 인간성 회복이니 뭐니 뭐니 별별 소리 다 해봐야 그게 제대로 안된다고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여기에 첫째 열쇠. 열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제망상 불구진하는 거지. 무명실성이 즉불성이 아니면은 부제망상 불구진 안됩니다.

망상은 제거해야 되고 진리는 따로 구해야 되고 그렇지요.

또 환화공신(幻化空身)이 곧 법신(法身)이니까 그대로 부제망상 불구진 하는 거예요.

환화공신은 버려야 할 거로 알았는데 아냐, 그대로 법신이라, 환화공신 이거 버리고 법신 따로 찾으면 곤란하다, 그건 있지를 안해. 첫째 있지를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다음에



法身覺了無一物이요

(법신각요무일물이다)

법신의 실상을 깨닫고 나니 아무 것도 없고


법신각요무일물(法身覺了無一物)이요 본원자성천진불(本源自性天眞佛)이라.

법신을 각요하면 무일물이야.

법신(法身), 법신이 뭐라고 했죠? 환화공신(幻化空身)이라고 했죠. 환화공신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고 나니까, 각요(覺了)하고 나니까 무일물이야.

여기에는 우리가 하나의 물건도 없다 라고 하는 말은 어떤 따로 분리해서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하는 그런 차별적인 한가지 사물도 없다.

전체가, 온 우주 전체가 그대로 법신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온 우주 전체가 진리다. 진리 그 자체다. 그러니까 따로 떼어놓을 물건이 사물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본원자성이 천진불이다. 본래 가지고 있는 근본자리 그대로, 뭐 이걸 조작하고 다듬고 만들고 정진을 하고 수양을 하고 무슨 육바라밀을 닦고, 뭐 화두를 들고 해서 부처가 되는게 아니고.

어느 정도 부처가 됐다, 또 뭐 어떤 『심우도』같은 거를 보면은 처음엔 뭐 소를 찾아가지고 그 소가 차츰차츰 순화되니까 머리부터 하얗게 되어가지고 나중에 꽁지까지 되고 뭐 이런 식으로도 이제 표현을 하죠.

여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부처는 온전한 부처가 아니라는 거예요.

본래 부처라야 그게 온전한 부처다 그거야. 본래 부처.

뭐 수행해서 다듬고 그러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本源自性天眞佛이라

(본원자성천진불이라)

모든 존재의 근본자성이 그대로 천진불이로다.


그래 본원자성(本源自性) 본래 모습 그대로의 자성이 천진한 부처다. 아주 이게요, 결정적인 이야기고 또 궁극적인 이야기고 궁극적인 이야기예요. 더이상 나아갈 데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거는.

그러면은 어떻게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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