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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각 수 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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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sAN (211.♡.76.142) 댓글 6건 조회 11,259회 작성일 07-01-20 00:15

본문

<www.born2.net의 자각수행 관련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주 많은 종류의 종교나 여러 수행법들이 이미 백화점식으로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그들은 서로 자기방법이 최고라 하고 서로를 헐뜯기도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나 불교같은 큰 종교에 몸담은 사람들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오늘 하고싶은 말은 바로 이런 모든 이세상의 종교나 수행법들은 다 <생각>들이고 그생각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면 여러분이 얻는것은 다결국은 이런저런 <체험>에 불과하단 것입니다.

물론 그체험들은 소중하지요.
마음이 깨끗해지거나 고매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평화를 얻거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를 얻거나 심지어는 예수석가를 만나거나 제가 부처가 되어보거나 우주를 자기안에 품어보는 등등 그것들은 다 매우 훌륭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여러분이란 그릇안에 무엇이 담기느냐하는 체험의 문제이지 여러분들 존재자신의 문제는 아니다 이말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는성품(기능이라해도 좋다), 듣는 성품, 느끼는 성품, 생각하는 성품등입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느끼든지간에 그대상들은 끊임없이 변해왔지만 그보고 듣는 성품들은 전혀 변함없이 그대로 똑같이 그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진짜 <나>의 특성입니다. 이것이 그릇이며 불교식용어로는 체(體)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에 반하여 여러분이 이런저런 수행법을 대하고 이게 옳은가 아닌가 판단하시는것들은 다 본질상 하나의 <생각>들이며 그생각에 의해 수행해오시면서 느끼고 체험한 것들은 그생각이 가져온 결과물들로서 일종의 <체험>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것들은 전부 마음의 쓰임새에 불과하니 용(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아무리 대단한 마음의 경지나 평화를 얻었다 하여도 그것은 다 여러분의 본질은 하나도 안변했고 다만 그본질이 가진것만이 변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닫는다는것은 또 진정 구원을 얻는다는것은 바로 이런 이치를 알고 자기의 참모습을 제대로 자각하는데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자각하지 못한이는 술취한이와 같습니다. 술취한 사람은 똑바로 못서고 못걷는 거와 같이 자기의 참모습을 모르면 제아무리 대단한 수행을 하고 경지를 가졌어도 그경지는 다오고 가는것들 뿐이라 늘 그것을 유지해야한다는 착각이나 스트레스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평생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생각을 자기안에서 에너지를 부여해서 힘을 쓰게 만든자는 바로 자기의 또 다른 생각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그것은 생각일 뿐이야>하고 판단하고 생각하는 자기자신즉 의식하는 <나>를 보아야 합니다. 늘 이렇게 자기자신, 즉 보고 듣고 느끼고 의식하고 생각하는 <나>를 계속하여 자각하고 느끼는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나의 體(참나)를 찾는 올바론 길인 것입니다.

그렇지않고 남들이 <이게 진리다>하는것을 따라다니기만 한다면 여러분들은 평생 그것에 구속되어서 그생각과 체험들을 굴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들에 끌려다니고 매여사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저는 종교에 관한 서적들이나 그많은 주석들을 거의다 그런행위의 결과물들로 봅니다.즉 제말의 요지는 用을 體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생각의 주인이 되어야지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그런 사람들이 그얼마나 많습니까? 그럼 이제 그 영원불변하는 참나를 찾는 좀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보고듣고 느끼는 성품이 진짜 <나>의 특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비유일 뿐이고 보고 듣고 느끼는 성품도 하나의 쓰임새일뿐(用의 자리일뿐)이니 그것을 가지고 있는 주인의 자리 즉 그자리의 본체(體)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사실 우리가 생각하고 보고듣고 느끼고 하는것은 다 의식으로 합니다. 즉 다시말해서 의식이 있을땐 생각과 느낌, 보고 듣고 냄새 맡는것이 일체가 그의식의 배경위에 이루어진다 이말입니다. 의식이 없는데 그런 자각행위가 가능한 사람은 없지요.
의식의 배경자리도(끊어진자리) 있습니다만 그것은 의도적으로 자각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우선은 자신의 순수의식을 빈마음으로 항시 자각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쉽게 말해 생각하는자와 생각을 분리하라는 것이요,체험하는자와 체험을 분리하자는 말이며 느끼는자와 그느낌을,감정을 가지는 자와 그감정을 서로 분리해보자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결국은 <주체>와 그주체가 만들어내거나 가지고있는 <객체>(생각,느낌,감정,사상,지식,업습,행동스타일등등)로 나뉘어져 분리가 됩니다.

우린 여태까지 그것들을 그냥 혼동하고 살아왔지요.
그래서 누가 이런저런 체험을 해야 깨달음이다하면 그런체험을 하려고 노력했고 또 그체험을 한번하더라도 계속해서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고 착각한 나머지 그것을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누가 이런것을 믿고 이런 생각을 가져야 구원이다하면 또 그런 생각과 믿음을 흔들림없이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보면 그런것들은 다 내가 가지고 있는 <체험>이자 소프트웨어 내용물들이지 바로 <나>자신은 아닌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미워하더라도 그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것이구요. 이처럼 나를 나누어보는것은 게임에서보면 그게임을 하는자(진정한 나)와 그게임속의 객체인 아봐타(몸과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로 나누어보는것과 똑같습니다. 그 게임을 하는 자인 진정한 나를 불교식 용어로는 법신불, 끊어진자리라고 하고 기독교식으로는 성부라고 하는데 그것은 계속되는 부정의 자리(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며 아닌것도 아닌것 : 그것들은 다 만들어진 피조물들이므로 )입니다.

그래서 몸도 내가 아니고 마음(생각)도 내가 아니라는 철저한 전제조건을 마음에 새겨가지고 공부를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단지 보면 보는 빈성품,들으면 듣는 빈성품, 느끼면 느끼고 사라지는 텅빈성품 그자리를 늘 자각하여야 합니다. 이럴때 내가 나란 생각이나 내가 무엇(끊어진자리를 상상으로 그려 가진다든가)을 유지한다든가 생각이나 느낌으로 가지고 있다든가하면 아니됩니다.
처음수행자는 일상속에서 보고듣고 느끼는 자신을 자각해야 합니다.
즉 매사에 주의(의식의 대부분)가 밖으로 달려나가서 대상에 따라가거나 빠지지말고 그보는 자기를 안으로 끌어들이는 기분으로 의식하라 이말입니다. 또 들으면 듣는 그대상소리에 밖으로 딸려가지말고 그소리를 듣는 자기를 안으로 역방향으로 잡아당겨서 의식하라 이말이구요.
이것을 한동안 아주 정성스레 집중하세요. 그래야 의식이 쉽게 왔다갔다 움직이질 않고 존재의 가슴(중심)에 고요하게 정착이 됩니다. 그때까진 방향성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습성적으로 외부로 마음을 자주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구상체를 만드는 기분으로 우선 좀 방향성을 가지고 그런 습성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다음에 내면이 고요해지고 선정력이 쌓이면 그안에서 그선정력의 배경과 바탕을 자각해나가라는 얘기입니다. 또 중요한 한가지는 자각을 무언가에 저항 하며 집중하는 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놓는 기분으로 집중 해야 합니다.

이것은 비유컨대 <입맛>을 찾는 것과도 같습니다. 입맛이 어디 흔적이나 있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입에서 혀와 더불어 스스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입맛을 자각하는 것이지 혀(몸)를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모든것은 다 우리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왔다가는 물러갑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몸이나 의식도 깊은 잠을 자면 사라졌다가 아침이 되면 돌아오곤 합니다. 그런데 진리란것은 이처럼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것이면 안되지요. 그래서 의식에도 집착을 하면 안됩니다. 텅빈 마음으로 자각하여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의식의 배경공간이자 우주근본체인 <끊어진자리>가 몰록 드러나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TV를 찾으면서 TV는 안보고 자꾸 그속에 상영되는 화면과 프로그램내용만 바라다본다는데 있습니다. 참으로 TV를 찾을려면 움직이는 그화면들과 프로그램들의 흔들리지않는 배경화면을 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꿈에서는 우리가 꿈속에 있지만 그꿈을 깨고나면 그꿈이 우리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세상역시 꿈이라서 지금은 그대가 꿈속에 있지만 그대가 그꿈을 깨고나면 이세상이 그대속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우리가 바로 무한한 배경그자체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든것이고 그모든것을 있게하는 <힘>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친자에겐 못깨친자와 하나 완전하게 다른점이 있는데 깨친자는 바로 이세상이 그안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아니면 아직 덜깨친것입니다. 중생은 자기 몸과 마음을 붙들고 살지만 깨친자는 그너머의 자리를 봅니다. 그는 무한이라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것을 다삼킨채 홀로 우주에 가득합니다. 그자유함이며 그무애함은 실로 열락이며 법열입니다.

댓글목록

암기님의 댓글

암기 아이피 (210.♡.212.16) 작성일

남의 글 머리속에 보관한다고 그것이 되는게 아닙니다.
자꾸만 외우려고만 하니까 안되지요~~~~~~~~~~~

m님의 댓글

m 아이피 (58.♡.246.17) 작성일

마음에 대자유를 누리기 위해 깨우치려고 한다면
어째 이론이나 방법에 메이려 하는가.

내가 선택한 지금의 삶을 즐기면 될뿐....
괴로우며 괴로운대로 좋고,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좋구나....

이세상 어디에도 신이 아닌것이 없거늘 어찌 멀리서 찾으려 하는가.

KasAN님의 댓글

KasAN 아이피 (211.♡.76.142) 작성일

머리속에 보관하라는게 아니라 자각을 하라는건데 글의 내용을 전혀 파악못하고 계시네요. 지금의 삶을 즐긴다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면 중생은 한명도 없고 죄다 석가모니불이겠죠 ^^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으리..

야인님의 댓글

야인 아이피 (58.♡.230.153) 작성일

깨친 자  = 못 깨친자
중생 = 부처  ,  분별하지 마시길......

야생마님의 댓글

야생마 아이피 (59.♡.147.173) 작성일

그래요. 카산님도, 암기님도, 엠님도, 야인님도 다~ 내안의 또다른 나의 관점들 이네요.^^
다~ 내안에서 일어 나는일.... 아이구~ 귀여운 내 분신들 ~~~~~쪽쪽쪽 ~~♥♡

qwa4875님의 댓글

qwa4875 아이피 (220.♡.5.103) 작성일

외람되이 한 말씀 올린다면,
꿈속에서나, 꿈없는 잠속에서나 언제나 성성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아직입니다.
이러히 되지 않는다면,
아직은 미완의 단계에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공들일 바 없는 공을 들여가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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