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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백만동자'를 그린 허허당(虛虛堂ㆍ비고 빈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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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족 (112.♡.206.210) 댓글 1건 조회 11,158회 작성일 11-05-0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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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놀릴 때만 한판 놀고…붓 놓으면 내 것이 없어
부호 집안, 철학책에 빠져 중졸 후 가출… 18세때 출가 성철과 향곡 스님 수발 들어
출가는 도 깨닫고… 부처 되려고 한 것… 절을 짓는 일 안해

백만동자(童子)를 그린 것도 '장난기'인데, 아무도 흉내 못 낼 걸 그려야지, 백만 개를 흉내 내다가는 탈진해 죽어버릴 테니. 백만 개를 세어봤느냐고? 동자 하나 그릴 때마다 '석가모니불' 외며 염주알을 하나씩 굴리지. 천 알 염주를 천 번 돌리는 데 일년쯤 걸렸다. 혹시 개수가 모자랄 수 있으니, '서비스'로 두 번쯤 더 돌리면 된다. 그 수행이 너무 즐거워 밥짓는 시간도 아까워 건빵을 던져놓고 먹었다.

경북 포항시 죽장면의 산골. 허허당(55) 스님은 손님이 온다고 머리를 새로 밀었는지, 덜 깎인 머리카락 몇 올이 남아 있었다. 그는 절(寺) 대신 11평짜리 단칸집에서 산다. 문패는 '휴유암(休遊庵)'. 쉬고 노는 암자라는 뜻이다.

안에는 부처상 족자와 승복 몇 벌, 화구(畵具), 찻잔, 전기밥통, 냄비, 재떨이, 색소폰, 이불로 차 있다. 그는 6년째 산골에서 혼자 자취하며 선화(禪��)를 그리고 있다. 가로 12m×세로 2.8m 대형 화폭에 부처와 백만 명의 동자상도 여기서 그렸다. 그의 선화는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다는 평도 있으나, 이는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허허당 스님은 자기 삶을 주인으로서 사는 사람은 결코 변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최보식 선임기자
나는 신도도 없고 보시를 받지도 않는다. 기름도 때야 되고 뭐도 해야 하고 돈이 좀 필요한데, 답답해질 때쯤 그림이 하나씩 팔려나갔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노니까, 함께 춤을 춰주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림 하나 갖고 간 뒤 오토바이를 한 대 갖고 왔다. 머리 깎은 중이지만 막 몰고 다녔다. 위 아래 이가 다 빠졌는데 임플란트 치료도 그림 한 장 갖다주고 다 했다. 얼마 전에는 학(鶴) 그림을 하나 갖고 가고는 중고차를 한 대 가져왔다. 현찰이 없어 문제지. 내 통장에는 돈 한 푼 없다.

현찰이 없지는 않았다. 몇 년 전 한 대형 사찰에서 그의 작품을 1억여원에 산 적이 있었다. 돈이 생기자 그는 전국을 다니며 신세 진 승려와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돈 떨어질 때까지 스무날이 안 갔다. 그의 형제 중에는 대구 그랜드호텔 회장이 있다. 그 형이 절을 지어주겠다고 했을 때도 거절했다.

절을 가져본들 깨달음과 상관없는데, 그 짓을 왜 하나. 내가 출가한 것은 도 깨닫고 부처 되려고 한 것이지. 이 산 저 산 다니면서 내 하고 싶은 것을 했다. 나는 대중 앞에서 법문도 잘 안 한다.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기분이 들고, 또 불사(佛事)하라고 말하는 것도 내 삶의 방식과 맞지 않다.

―지금 소속 절이 있나?

세상의 절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고 싶으면 가서 놀다 오고, 방 있으면 앉아 살았다. 한 번도 '여기 좀 살아도 되는가' 묻고 산 적이 없다. 출가자가 살라고 절이 있으니 당연히 그게 내 집이다. 물론 내 집이지만 내가 가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내 절 내 절' 하는 소릴 들으면 웃긴다. 진리의 맛을 보면 그런 짓을 못하게 된다. 뭔가를 알면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승려들이 돈과 연관되고 절을 크게 짓고…, 사실 부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 의미가 없다.

―작년에 조계종 공문이 와서 '사후에 재산을 반납한다는 각서'를 썼다고 들었다.

죽고 나면 내 그림들은 조계종으로 귀속된다. 승려 중에는 개인 재산이라고 다투는 이도 많다. 나는 얼른 해준다. 어차피 죽을 때쯤이면 내 그림들을 다 팔아먹었지 내게 남아 있을 것 같나, 하하.

그는 시골의 부호(富豪) 집안 출신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가출해 몇 년 간 떠돌다가 해인사로 출가했다. 열여덟살 때였다.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니체, 쇼펜하우어 등 철학책을 많이 읽었다. 학교 공부는 시시했다. 고등학교에 가기 싫어 도망나왔다. 당시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것인데 하루를 사나 만년을 사나 무슨 차이가 있나, 뭔가 해답을 찾고 싶었다. 그때 불교 경전을 보니 부처가 '멋있는 사나이'였다. 궁전을 버리고 처자식을 버리고 자기를 찾아나섰다. 소유와 집착을 버린 길 위의 삶이었다. 이 공부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주변 지인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는 촉망받은 수행승이었다. 그는 당대 선승인 향곡(香谷) 스님 문하였다. 향곡이 성철(性徹) 스님을 만나러 해인사에 오면 그가 수발했다. 산에 오르는 거구의 성철 스님이 아이고 힘들어라 하면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주곤 했다.

두 분이 노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서로 '성철아' '향곡아' 부른다. 한밤중 숲 한쪽에서 숨어 있다가 뛰쳐나와 '까꿍' 장난하면 '아이 깜짝이야' 한다. 정말 걸림이 없었다. 진리를 설파할 때는 서릿발 같았지만 일상에는 철없는 아이 같았다. 성철 스님은 종정(宗正)에 추대돼도 '내가 왜 가나. 그 자리 비워놔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요즘에는 이렇게 그리운 분들이 없다.

'화엄법계도'
'생명의 축제'
―선화를 그리게 된 것은 지리산 토굴에서 용맹정진을 하던 중 '문득 깨달아' 그랬다는데, 문득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인가?

당초에는 부처의 끄트머리라도 되고 싶었다. 어느 날 그런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조차도 '욕망'임을 깨달았다. 내가 무(無)가 되고 일체가 무가 되는 상태, 깨닫겠다는 마음도 없는 고요한 상태가 되면 거기에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지. 나는 깨닫고자 하는 대상의 세계로 쫓아가려고만 했지, 세상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진리임을 몰랐다. 내가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버리면 스스로 찾아온다. 그때 '허허당(虛虛堂)'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고 빈집처럼, 내가 이렇게 살면 되는구나.

―그런 깨달음과 선화를 그리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내가 경험한 상태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불교에는 8만4000 법문과 주석서가 있으니, 그런 글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그림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놀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림에는 기본적인 테크닉이 필요하다. 출가 전에 배운 솜씨인가?

지리산 벽송사에서 한 스님이 글을 쓰기 위해 먹을 갈아놓은 것을 보고 내가 붓을 잡고 휙 그려보았다. 수영하는 사람은 일단 물에 뛰어들면 안 죽으려면 하게 된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하면 그런 기술이 오게 된다.

―세상 그대로의 상태가 진리임을 깨달았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진리 내용은 뭔가?

일체가 꿈이다. 현상 모든 것이 꿈속의 꿈이다. 그걸 아무리 얘기해도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니 꿈인 줄 모른다. 무엇 하나 고정된 실체가 없다. 무엇 하나 변하고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특별히 욕심내고 집착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어디에도 매이지 않게 된다.

―삶이 꿈이라면 허무한 것일 뿐, 굳이 애쓰며 살아갈 필요가 있겠나?

잘못 알면 허무에 빠지지만 똑바로 깨닫고 나면 나날이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 같은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애써 죽지 않아도, 가만히 버려둬도 죽는 것을 안다. 원래에는 나고 죽는 것조차 없다. 우리가 그렇게 이름을 부여할 뿐이다.

―이런 식의 문답은 말의 유희처럼 비친다. 어쩌면 깨닫는 순간은 있겠지만 평생 깨달음 속에서 사는 승려가 있는지, 나는 그걸 의심한다.

공부를 해보면, 머리로 깨닫는 '해오(解悟)'가 있고 몸 자체로 깨닫는 '증오(證悟)'가 있다. 몸 공부가 중요하다. 의식은 감추고 속일 수 있다. 하지만 몸에 가시가 박히면 '아야' 반응하듯 그냥 깨달음으로 가버린다. 깨달음은 언어 이전의 세계다. 그래서 개구즉착(開口卽錯·입으로 말하는 순간 틀림)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 깨달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언어로는 다 설명이 안 되나, 진리 속에 노는 맛이라는 게 있다. 정말 재미있다. 나는 인생은 노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님은 가족 부양의 의무가 없으니 재미있게 놀 수가 있다.

(웃음) 내 혼자 노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밝아지고 진리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지.

그를 두 번 만났다. 지난겨울에 가서는 함께 술만 마시다 그냥 돌아왔다. 술·담배·고기를 하고 한때는 여자와도 잠자리를 했다 하니, '땡추'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 눈빛과 깡마른 얼굴이 좋았다.

한 것은 했고 하지 않은 것은 안 했다. 나는 한 것을 안 했다고 하지 않는다. 주인공으로의 삶을 살면 변명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술 한잔 마시면, 멸치 하나 먹어도 죽는 줄 알았다. 이는 공부에 방해되니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술에 내가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하지 마라'가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러면 승려의 삶과 속인의 삶은 어떤 차이가 있나?

무엇을 취하기 위해 다투지 않는다. 아직도 통장에 돈 한 푼 안 갖고 있다. 그림을 팔아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돈 주고 산다. 그러면 '되게 비싸게 받자'는 장난기가 발동한다. 비싸게 받아도 모아놓고 쓰지 않는다. 나는 붓을 놀릴 때만 노는 것이지, 붓을 놓으면 내 것이 없다. 나는 이를 확실히 깨닫고 있다. 사람들이 괴로운 것은 소유와 집착 때문이다. 가령 아내도 당신 것이 아니다. 자식도 당신 것이 아니다.

―선화를 그리는 것 또한 자기표현과 명예의 집착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게 돼 있다. 부처님이 8만4000의 법문을 설파하고 제일 마지막에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엄청난 얘기를 해놓고 시치미를 떼버린다. 환장할 노릇이다. 부처는 중생과 세상을 위해 말은 했지만, 당신 자신을 위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림으로써 비워내는 작업을 한다. 내 안의 세계에서 망상 집착을 비워내는 수행을 하고 있다.

―주변 도반(道伴)들은 스님을 어떻게 보나?

희한한 중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내가 그들에게 맞춰 살지 않는다. 그들이 시비를 걸어도 걸려들지 않는다. 자신 내면과의 정직한 대화만큼 훌륭한 도반은 없다. 부처의 무상(無常), 법의 실체를 어느 정도 봤으니 내 길을 가는 힘이 있다. 나는 세상이 맞춰놓은 잘난 중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당초 내가 출가했던 목적도 아니다.

낮에는 초여름 날씨였는데, 산골에서는 오후 다섯시가 넘자 쌀쌀해졌다.

부처님은 외롭지 않았을까, 엄청나게 외로웠을 것이다. 고독하지 않았을까, 엄청나게 고독했을 것이다. 깨달았다고 해서 외롭고 고독하고 슬픔이 없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런 깊은 슬픔 속에서 자비와 사랑이 나온다. 존재에 대한 슬픔이 없이는 깨달음이 나오지 않는다.

말은 왜 이렇게 화려한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댓글목록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4.♡.40.191) 작성일

잘은 모르겠지만 깨달음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 어째 비원님 말씀하고 비슷한 것 같네요. ^^

어느 날 그런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조차도 '욕망'임을 깨달았다.
저는 인터뷰에서 이 말이 제일 마음에 드는군요. ^^ 두 글자로 완전 따봉입니다.

그나저나, 이 최보식 기자는, 아~ 욕나올라 그러네요.
욕 나오기 전에, 일단 지족님께 땡큐.

이 최보식 기자는, 머리에 X만 가득차서 말이죠. 정말 아~ 짜증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이런 사람을 만나면 뭐합니까? 기껏 한다는 말이,
'말은 왜 이렇게 화려한 것일까' ㅋㅋㅋㅋㅋㅋㅋ

그나마 이번 인터뷰는 좀 낫네요. 다른 인터뷰를 보면 지가 완전 이 세상의 심판자로서.....에휴~

앗! 잠깐!!!!!!!!!!!!!!

우리 비원님 조선일보 인터뷰한번 하시면 좋을텐데 말이죠.
최보식 기자님! 멍청이라고 욕한 거 취소합니다. ^^
지금까지 저는 조선일보가 저를 인터뷰하러 오면 거절한다는 생각만 했는데,
한번 생각을 다시 해봐야겠네요. ^^

아무개도 노벨상수상자로 결정되면 딱! 거절한다는데, 그러지 마시고, 그 상금받으셔서 저 족발이란 만두좀 사주세요. 배고파 죽겄어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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